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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스런 것들의 기록

소설 파친코를 읽고-이민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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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에 걸친 재일동포의 삶을 다룬 소설 파친코

이 책은 재일동포들의 생애를 일제 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4대에 걸쳐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선자는 일제강점기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한수와 결혼해 아이를 갖게 되고, 이후 오사카로 넘어가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간다. 기형아 훈이, 그의 딸 선자, 선자의 아들 노아와 모자수, 그리고 모자수의 아들인 솔로몬에 이르는 한 집안이 그 시절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살면서 재외동포로서 차별받는 이민자들의 애달픈 삶의 모습과 그들이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한국인이란 것에 대한 정체성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1권에서는 주인공 선자와 이삭이 결혼하여 일본으로 넘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권은 일본 오사카에서 살아가는 선자와 이삭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선자의 남편 이삭은 천황숭배를 거부하여 옥살이를 하다가 감옥에서 죽게 된다. 이후 선자는 홀로 아이들을 기르며 한국전쟁시기, 일본의 부흥기와 버블시대까지 겪으며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일본인이 될 수도 없는 이민자의 삶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이민진 작가는 거의 40년에 걸쳐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4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큼 등장인물들이 많아 자칫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의 평소 생각인 '소설은 독자에게 즐거움을 줘야한다.' 라는 생각을 유념하며 쓴 책이라 예상외로 지루하지 않고 쉽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너 같은 사람이나 나 같은 사람은 백명이 모여도 조선을 바로잡을 수없다고. 일본인들이 물러나고, 이제는 소련과 중국, 미국이 엉망진창인 작은 우리나라를 놓고 싸우고 있어, 네가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조선은 잊어버려, 네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지금까지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에서 일본인에 의해 학대받고 고통받은 우리 민족들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으로 건너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을 수 밖에 없었던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는 사실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삶이 너무 안돼서 가슴이 아팠지만 그래도 씩씩한 모습에 응원을 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선자의 똑똑한 첫째 아들 노아도, 둘째 아들 모자수도 결국은 파친코에서 일한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 또한 미국 유학을 다녀온 재원이나 다니던 직장 인 은행에서 부당해고를 당하고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파친코에서 일하겠다고 한다. 모자수도 처음에는 그런 아들을 반대하지만 일본에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결국 아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

그 당시에는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택할 수 있었던 직업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야쿠자와 연결되어 멸시를 받는 그런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노아나, 솔로몬처럼 아무리 돈이 많고 똑똑하다고 해도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극히 제한되었고, 결국 다시 파친코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파친코를 운영하고 있다는 큰할아버지의 삶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어른들 말씀이 1950년대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서 폐지를 수집하며 힘들게 생활하다가 현재는 아주 큰 파친코를 운영하고 계신다고 했다. 말로만 들을 때는 현재 엄청난 부자라고 만 해서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만했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그 시절 조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직업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세상이 변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일본 사회에는 혐한 등 재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일본인의 이기심과 차별을 이겨내고 이렇듯 굳건히 자리 잡은 재일동포들을 보며 세상이 좀 더 따뜻하고 차별 없이 공정해지길 바란다.

이 책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한 문장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적어도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이 책의 주인공들은 험난한 삶을 살았더라도 적어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라는 강력한 긍정 메시지 말이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괴롭거나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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