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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미군철수, 탈레반 장악, 중국-앞으로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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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탈레반 장악, 중국-앞으로 전망



탈레반 is

1)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은 고산지대이다. 지리적으로 중동의 국가가 중국이나 인도로 진출하거나, 몽골이 중동으로 진출하거나,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으러 남하할 때 꼭 거쳐가야 하는 곳이다. 19세기 부동항을 차지하러 남하하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 간의 싸움을 '그레이트 게임'이라 부른다.

2) 1960~1970년 소련은 앞의 러시아처럼 부동항을 얻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노렸고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군사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련과 교류를 확대한다. 이 과정에서 소련에 연수를 보낸 아프가니스탄 군이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들어온다. 이에 이슬람 종교를 원칙으로 삼았던 지방 토착 세력은 공산화를 반대한다. 그러던 1978년 연수를 다녀온 공산주의 성향의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공산 정권을 수립한다. 그리고 공산주의를 반대했던 지방 세력들이 무자헤딘이라는 반군 게릴라를 조직해서 맞서 싸우게 된다.

3)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무자헤딘) 전쟁 당시,  무자헤딘은 소련에 대항하여 파키스탄 정보부를 통해 미국에서 무기를 제공받는다. 무자헤딘은 전쟁 직후 미국에게 이용만 당한 후 버려졌고 이에 이들 사이에 반미와 반아프가니스탄이 성행하게 된다. 이들은 탈레반이란 단체를 만든다. 탈레반은 1994년 10월, 2만 5천명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주에서 결성한 수니파 무장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이다. 탈레반은 '학생들' 이란 뜻이라고 한다. 결성 당시 군정 세력으로 출발, 1994년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80% 정도를 장악한다. 1996년 파키스탄에서 군사를 지원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재정지원을 받아 수도 카불(Kabul)을 점령하고 정권을 수립한다.

4) 초기 탈레반은 과도정부인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하였고 아프가니스탄 내 반군 조직을 무장해제시키고 약탈과 강도 부정부패를 없애는 데에 힘을 쏟았으며 일상 상업활동을 재개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 가문의 지지를 얻는다. 그러나 내전이 계속되면서 국가 접수가 어려워지자 지역 지휘관들과 전략적인 협정을 체결하여 지역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위법 상황과 이에 따른 각종 인권침해를 도외시함으로써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5) 더욱이 이슬람교에 대한 엄격한 해석으로 날이 갈수록 사회차별이 심해지고 여학교 폐쇄, TV금지, 가혹한 이슬람식 처벌제도 부활, 아동 학대 등 많은 부작용을 낳음으로써 국제적 비난을 산다. 2001년 3월에는 군대를 동원해 로켓과 탱크로 아프가니스탄 내의 불교 유적과 불상을 부수는 등 유례없는 유적 파괴행위를 공개적으로 일삼기도 한다.

6) 2001년 9월 1일 알카에다가 911 테러를 일으킨다. 이에 분노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알카에다와 그 대장 빈 라덴을 없애기로 한다. 그들의 근거지가 아프가니스탄이었으며 이때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미국 정부는 탈레반 정부에게 빈 라덴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한다. 이에 분노한 미국은 2001년 10월 7일부터 미군과 영국군의 합동 공격으로 대부분의 공군기지, 지휘본부 등을 파괴하였으나 탈레반은 여전히 빈 라덴을 인도하지 않고, 항쟁 의지를 밝혔다.

7) 2001년 11월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 임시정부가 구성되었으며 탈레반은 파키스탄 접경지역으로 도피하였다. 이후 탈레반은 지속적으로 게릴라전, 테러전을 펼치며 자신의 세력을 재 확장하고자 했고, 전쟁 또한 20년가량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8) 탈레반은 테러조직을 지원하고 마약을 거래하며 자금을 마련한다.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탈레반 수도 카불 점령

1) 2011년 오바마 정부는 9.11 테러의 배후 빈 라덴이 은둔한 곳을 파악하여 그를 사살하는 데 성공하면서 더 이상 미국은 아프간에 주둔할 명분이 사라진다. 2014년 오바마 정부는 임기 내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를 시도하지만 철수 계획은 취소된다.

2) 미군 점령 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정부와 정부군에게 많은 돈과 군사물자를 지원한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은 국가보다는 부족단위에 익숙하여 지방에서는 정부의 교체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현지 민간인들은 외국 군인들에게 적대적이었기에 미군이 게릴라들을 아무리 소탕해도 민간인들이 계속 충원되었다. 또한 언젠가는 떠날 미군이었기에 현지인들은 앞으로 계속 있을 탈레반에게 적대적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 2020년 2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 '도하'(Doha) 평화 협정을 맺어, 탈레반과 협상을 시도하고 2021년 5월 미군을 철수하기로 선언한다.

 

출처 : 구글 이미지



3) 미국이 바이든 행정부로 바뀌고 트럼프가 약속한 날짜를 넘겨버리자 탈레반 측은 약속을 지키라며 압박했다. 2021년 7월 2일, 아프가니스탄 최대의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과 나토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 군이 전격 철수했다. 철수 당시 아프간 정부 측에도 미리 알리지 않고 급작스럽게 하룻밤 사이 철수했는데 약탈자에게 기지가 한번 털린 후에나 아프간 정부가 철수 사실을 인지할  정도로 비밀리에 진행됐다고 한다. 바그람 공군기지는 미군의 아프간 전쟁의 핵심기지로 거대한 규모인데 하룻밤 사이에 철수했다는 소식에 세계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이는 1975년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할 때와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모습이 닮은꼴이 많다며 비판하는 이유이다.

4) 아직 미군이 주둔해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주요 지역을 빠르게 장악하기 시작했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2021년 8월 15일에 수도 카불을 점령한다. 이미 아프간 정부는 무너진 상태였고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도 해외로 도주해버린 상태였다.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각국 대사관 등에서도 겨우 몇 시간 만에 준비해서 피난을 갔고 수많은 현지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기 위해 공항으로 달려갔다. 공항은 쉽게 말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행기에 매달려 추락한 형제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다.

5) 아프간 정부군이 백기 투항한 탓에 수도 카불에 무혈입성한 탈레반은 손쉽게 대통령궁으로 입성했다. 탈레반 대변인은 "아프간 전쟁은 끝났다. 우리는 주민과 외교 사절의 안전을 지원하겠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장한다. 모든 아프간 인사와 대화할 준비가 됐으며, 필요한 보호를 보장할 것"이라고 다소 유화적으로 변한 듯하였으나 이는 입성 초로 곧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6) 이로서 미국은 20년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며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엄청난 돈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탈레반 척결에 실패한다. 1979년 이슬람 무장세력을 척결하겠다며 아프간을 공격한 소련도 10년 만에 아무런 성과 없이 철수했던 것처럼  끈질기게 싸우는 아프가니스탄은 강대국의 무덤이 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백악관으로 복귀한 후 "지난 한 주 동안 전개된 상황을 감안하면 미군이 아프간 개입을 끝내는 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밝히며 "아프간 군 조차 스스로 싸우지 않는 전쟁에서 미군이 싸우고 죽어서는 안 된다" 고 강조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앞으로의 아프가니스탄의 전망-중국과 미국

 

와칸회랑(Wakhan Corridor), 출처 : 구글맵스


과거 영국은 대영제국 시절 영토확장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고 이 무렵 러시아도 부항구(얼어붙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남하 중이었다. 그러다가 두 나라가 한 곳에서 충돌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며 이 충돌을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이라 부른다. 이후 영국은 직접 러시아와 대치하지 않도록 아프간 북동부에 한쪽 팔을 쭉 편 것 같은 와칸 회랑을 완충지로 남겨둔다.


<중국이 절대 뺏길 수 없는 지역-신장 위구르 자치구>

1) 경제적인 이점
와칸 회랑은 과거 실크로드의 주요 루트로 좁고 험준한 산지로 천혜의 요새 지역이다. 이 지역과 바로 붙어 있는 지역이 바로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이다. 1994년 중국이 점령한 이 지역에는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중국-파키스탄 히말라야를 관통하는 송유관이 건설되어 있다. 이 송유관을 통해 중동의 석유를 곧바로 중국 서부로 끌어와 내륙 수송로를 통해 석유 소비가 많은 동부 연안 지역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2) 정치적 문제-소수민족 독립
신장위구르 자치구는 티베트 자치구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인권 탄압이 자행되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의 위구르족은 이슬람을 믿으며 탈레반과 같은 종파인 수니파 이슬람이다. 그간 중국은 이슬람 사원을 화장실로 만들어 버리고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8천 개를 파괴하는 등 반 이슬람 정책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근거지로 하는 무슬림 단체가 위구르족의 분리, 독립을 부추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수많은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에 있어서는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에 중국은 발 빠르게 지난 7월 28일 탈레반의 이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중국으로 초대하여 텐진에서 왕이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고 중국 정부는 탈레반과의 적절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대신 아프간 세력이 중국에 위해가 되는 일은 없도록  요구했다.

3) 앞으로 탈레반은 이 와칸 회랑을 통해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을 활발히 침투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19세기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처럼 제2의 탈레반과 중국과의 그레이트 게임이 치러질지도 모르겠다. 신장위구르의 독립을 탈레반이 주도하는 것을 중국이 가장 염려하는 것처럼 반대로 탈레반이 영향을 준다면 둘 사이의 무력 충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4)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통제가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철수했다.  앞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중국이 추진 중인 신 실크로드 전략)이 강대국의 무덤인 아프가니스탄에게도 통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2002년 인도-네팔 여행을 갔을때 일이다. 그 중 인도에서 티벳인들이 모여산다는 지역 '다람살라' 라는 곳에 10일간 머문 일이 있다. 그리고 어느 티벳 절에 갔는데 오체투지를 하며 티벳 독립을 기원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달라이라마 보다 서열 밑인 티벳의 정신적 지주인 란첸라마? 정확한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그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들에게 얼마나 티벳의 독립이 간절한 지 제3자인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했다. 그 당시에도 그는 시시떄떄로 중국으로부터 살해위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이 얼마나 심한 지 믿기지 힘든 상황이었다. 그들에 동화되어 나또한 그곳에 머무는 동안 Tibet free라는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녔을 정도로..중국과 미국의 패권다툼? 이번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가 중국 내 분열을 유도하여 중국 내 독립을 원하는 소수 민족 티베트, 위구르족 등이 얼마나 용기를 내게 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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